샤먼 제국 -  박용숙 지음/소동 |
나는 어릴적에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즐겨읽었다. 물론 원문 그대로가 아니라 아이들이 읽기 쉽게 이야기처럼 적혀있는 글을 읽은 것이긴 했지만 학창시절에 그 기억으로 인해 꽤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두 권의 책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고,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구성과 해석을 담아놓기도 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국사선생님께 들었었는지 국어 선생님께 들었었는지 불분명하지만 이야기만큼은 재미있었더랬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배재하더라도 지금까지 왕조사 중심의 역사만 배워왔던 내게 샤먼제국은 머나먼 안드로메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지만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샤먼'이라는 것 때문에 처음부터 한쪽 얼굴을 찡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지도 모르지만 성경을 읽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길가메시 서사를 읽으면서 기원전 세상의 이야기가 어떠한 공통점과 어떠한 세계관을 갖고 있었는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의식행위는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것이 즐거웠다는 걸 생각해보면 결코 선입견이 있었던 것은 아닐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곧바로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역사를 재구성해보지는 못하겠다. 우리의 단군 조선이 아시아 대륙의 한쪽 끝에 붙어있는 반도에 있었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만주의 드넓은 땅을 지나쳐 페르시아 지역까지 지배하던 샤먼, 제정일치 국가였다는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동안 흥미를 끌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논증이 조금은 주관적인 꿰어맞추기처럼 보여 선뜻 수긍하기는 힘들었다. 고대사의 연구는 기록에만 의존하기 힘들고 온갖 기록과 유적, 유물을 보면서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과거의 역사를 추론해봐야 한다는 말은 맞을것이다. 하지만 그 역사적 상상력이 정확한 논증을 벗어나 막연한 상상이 되어버리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환단고기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저자가 언급한 기자조선이라는 것은 중국의 동북아공정의 일환으로 확대해석하려하고 있는 기자의 조선 지배설일텐데 그에 대한 내용의 언급은 없이 그저 한대목을 인용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스러웠다. 그만큼 내가 갖고 있는 우리 고대사의 지식과 인식수준이 낮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성경의 창조설화와 길가메시 설화가 비슷한 알레고리를 갖고 있으며, 기독교 전례속에도 태양신 숭배나 축제의 잔재가 많이 섞여들어가 있다는 것들은 일부러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근거로 유적을 찾아 헤매던 하인리히 슐레이만이 결국은 트로이 유적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고대 역사는 어떤가. 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고전은 어려운 한문과 뜻풀이에만 집중해서 지루하고 재미없던 기억뿐이다. 이러한 것이 어쩌면 우리 역사를 화석화시켜버리는 것인지도 모르지.
"제가 틀린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틀리면 왜 틀렸는지 이야기해 보자는 겁니다. 샤머니즘을 미신으로만 치부하니까,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주눅이 들어있어요. 참으로 중요한 연구인데 말입니다.이 책으로 샤머니즘과 고대사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저자인터뷰에서) 샤먼제국의 의의는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실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논쟁을 이끌어내고,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 그래서 역사의 진실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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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ifewithu.egloos.com2010-04-08T06:37:03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