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나는, 아니 나도 울컥 울어버릴뻔했다. 이야기의 전개과정과 마무리, 그리고 또 다른 방향으로 뻗어있는 삶의 길에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치않고 모든 진실과 사실을 독자들에게 담담히 이야기 해 주는 서유진의 편지를 읽으며,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았어요'라는 민수의 말은 지금도 그저 멍하니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모습, 홀로 더불어 사는 모든 이들과 홀로 쓸쓸하고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들의 모습, 진실이 안개에 파묻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까지 모두.
교사에 대한 특별한 사명이랄 것도 없는, 사업에 실패해 망해버린 사업가 강인호는 아내의 노력 - 그나마 자본이 없으면 이룰수도 없는, 청각장애인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채용되어 무진으로 내려간다. 안개가 자욱한 무진은 강인호가 도착한 첫날부터 짙은 안개속에서 기차에 치어 숨진 학생에 대한 사건이 그대로 사고사로 쉬쉬하며 감춰져버리고, 여자화장실에서 들려온 비명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듯 무심히 행동하는 교사들의 분위기에서 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청각장애인학교에 수화를 하지 못하는 교사가 대다수라는 첫느낌부터 그 '자애'학원의 실체를 짐작할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하나씩하나씩 그 실체의 현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의 예상을 뛰어넘어버리는 지독한 진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안개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고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헤매게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겨웠던 것이다. 차라리 짙은 어둠이라면, 그 어둠속에서 실날같은 희망 한조각만 보여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끝도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는 안개속을 헤매이는 것은 또다른 절망일뿐인 것 같았다.
작가는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일어난 성폭행이라는 사건의 줄기에서 전혀 산만하지 않게, 아니 오히려 짧고 간결하게 그 곁가지들을 붙이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들은 다시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게끔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들 - 진실이 아닌 - 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 진실을 담고 있는 선이 항상 거짓된 악에 승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대중은 진실의 선이 승리하기를 바라면서도 내 일이 아니라면 외면하고 거짓을 용인해버린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이다.
인권운동을 하는 서유진도,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갈등하다가 결국 가정을 선택한 강인호도, 손녀를 팔아 자식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던 할머니의 한맺힌 합의서도, 폭풍같은 고난을 겪고 난 후 자신도 똑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 민수도 모두 다 끌어안아주고 싶을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면, ... '불쌍하고 불행한 적이 있다면 그건, 나도 가끔은 뻔히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것과 타협하고 싶어질 때'라는 서유진의 말이 내 심장을 울리고 있다. 외면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외면하고 거짓을 용인하고 타협하며 이 세상은 아름답다는 최면을 걸고 있는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서일까. 나의 마음 밑바닥에서는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257)라는 말이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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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ifewithu.egloos.com2009-08-10T08:54:17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