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오.
에프라시압 이야기에프라시압 이야기 - 10점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문학동네

젯잘 데데는 죽음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우리네 삶 역시 그러하다고.

에프라시압 이야기는 죽음과 죽음에게 목숨을 내주어야 하는 젯달 데데가 또 다른 목숨을 데려가기 위한 여정에서 목숨을 걸고 이야기 게임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언뜻 '죽음'과 '노인'의 대화라는 것에서 우리네 온 삶의 여정이 그려지지 않을까 예상은 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예상 이상으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문장을 읽어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읽어나갈수록, 죽음과 젯잘 데데의 이야기를 곱씹어 볼수록,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 내용뿐 아니라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뜻에 놀랄뿐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내가 에프라시압 이야기를 온전히 다 소화해냈다는 뜻은 아니다. 되새겨보면서 천천히 읽어봐야 하는 책을 - 물론 다른 문학작품을 읽는 시간에 비하면 세배는 천천히 읽은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뜻을 음미하기 전에 글자들을 먼저 읽어버렸다.

수명이 다 된 건달을 데려가기 위해 죽음은 그를 찾아가는데, 건달은 그 자리에서 게임 제안을 한다. 바로 목숨을 걸고 이기게 된다면 백년의 수명을 달라는 것이었다. 두명을 한편으로 네명이 필요한 으뜸패게임을 승락한 죽음은 게임에 실패한다하더라도 원망을 하지 않을 듯한 노인 젯잘 데데를 찾아가 한편이 되어주기를 청한다. 물론 게임은 죽음의 승리로 끝나고 건달과 그의 친구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죽음에게 내어준다. 에프라시압 이야기는 그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죽음이 젯잘 데데에게 목숨연장을 조건으로 이야기 게임을 제안한 것이다.
그래서 에프라시압 이야기는 죽음과 젯잘 데데가 공포, 종교, 사랑, 천국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나씩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각각의 이야기의 주제는 공포, 종교, 사랑, 천국이라고 하지만 이야기속의 이야기는 결코 원초적인 개념으로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이야기 안에 담겨있는 은유와 상징들을 하나씩 이해해나가려 할 때마다 이 모든 주제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처음에 우리가 이 게임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하오. 먼저 우리는 공포 이야기를 하나씩 했지요. 하지만 공포가 우리 영혼에 그다지 잘 와 닿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우리는 종교를 주제로 택했소. 그리고 방금 사랑 이야기를 끝마쳤소.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소. 어떻게 하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까?"(262)
사람들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모색이 필요하다. 모색은 곧 종교라 할 수 있으며,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면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처럼 죽음과 젯잘 데데의 이야기 주제는 그렇게 다 연결되어 있으며, 그 이야기는 곧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죽음과 젯잘 데데는 각각의 주제를 놓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으니 이 책에는 이야기속의 이야기가 8편이 들어있다. 그 이야기들은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만 늘어놓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를 즐기고, 그 안에 담겨있는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끝에 있는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언젠가 당연히 맞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삶을 즐기며 기쁨을 느끼고, 마침내 미소짓는 얼굴로 천국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보다는 생명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더군. 사람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사실 아주 커다란 행복을 놓치고 있어.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공포를 신이라고 말들 해. 하지만 세상을 두려움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신을 보았을 거야"(182)

책을 읽다 간혹 그 뜻을 다시 되새겨보기 위해 소설속의 문구를 옮겨적곤 하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면 나는 책의 전체를 옮겨적을듯이 맹렬히 본문을 적고 있곤 했다.
노벨상으로 유명해진 오르한 파묵이나 터키 최고의 작가로 알려져 많은 책이 번역된 아지즈 네신의 작품으로 터키문학을 접해보긴 했지만 에프라시압 이야기는 터키 문학의 한층 더 깊은 철학적 사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나 역시 앞의 두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 이름은 아직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만, 그의 또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는 결코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삶에 대해 그리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작품에 대해 어찌 실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오늘날까지 삶은 내게 항상 멋진 것들을 보여주었소.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소. 추한 것이란 없소. 어쩌면 속아서 바보처럼 삶에서 추한 것을 보는 사람이 추한거요. 하지만 나는 세상을 두려움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인식하고 있소. 내가 세상을 그렇게 보고, 세상도 나를 보고미소를 짓는데, 내가 세상을 보며 미소를 짓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소?"(109)






http://lifewithu.egloos.com2009-11-26T15:41:510.31010
by island | 2009/11/27 00:41 | 트랙백
자본의 논리에 감추어진 진실이란.
우유의 역습우유의 역습 - 10점
티에리 수카르 지음, 김성희 옮김/알마

우연찮게도 나는 영양결핍증세가 있는지 몸이 허해서 어지럼증에다가 손발톱도 마구 뭉게지며 살아왔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손톱이 꺾어져버려 심할땐 피범벅이 되어 다녀야했고, 여름 한철은 어지럼증에 쓰러질까 걱정하며 절대로 무리가 되는 험한 일은 안한다. 물론 조금은 과장된 말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 말짱해보이는데 갑자기 속이 안좋아 길거리에 주저앉고 토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것이 병이라고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걱정이 되었는지 식사를 못할땐 우유 한 잔이라도 마셨고 지금은 아예 매일 아침 배달되는 우유를 꼬박 챙겨 먹고 있다. 나는 어릴 때 모유말고 소젖을 먹고 컸으니 우유가 내 몸에 맞을꺼야 그러면서. 사실 손발톱은 조금 튼튼해졌고 아침에 허한 상태에서 기를 못펴다가 우유 한 잔으로 인해 기운을 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니, 그런데 우유가 완전식품은 커녕 독이 될 수도 있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기 힘드니 조금 긴 글이지만 책의 내용을 인용해봐야겠다.
"락타아제가 더 이상 나오지 않거나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이 락토오스를 함유한 유제품을 다량으로 먹었을 경우 장내 박테리아가 락타아제 대신 락토오스의 대사를 맡는다. 장내 박테리아는 락토오스를 분해해서 수소와 기타 분해 물질들을 내놓는데 ...(중략) 그러한 독소들은 콜레라 내지는 대장균이나 가스괴저균처럼 위장염의 원인이 되는 기타 장독소와 비슷한 메커니즘에 따라 신경계, 심혈관계, 근육, 면역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락토오스에 대한 거부반응은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처음으로 기술되었는데 현재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의사들의 견해에 따르면 락토오스가 몸에 받지 않으면 보통 설사와 기타 위장 장애가 유발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락토오스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락토오스가 미치는 영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락토오스의 영향은 전반적인 중독 증세를 내용으로 도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두통, 현기증, 집중력 저하, 기억력 장애, 극심한 피로, 근육과 관절의 통증, 알레르기 반응, 부정맥, 구강 궤양, 인후통...
의사들은 이 증상들을 모르는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의사들이 락토오스가 소화계만 관련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고, 두번재는 이러한 증상이 시간과 개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락토오스가 우리 식생활에 어느 정도 들어와 았는지를 의사들이 모르고 있다는 게 또 하나의 이유다. (142-143)"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하기도 하지만 저런 여러가지의 질환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니!
아, 물론 우유를 마신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질환을 앓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우유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골다공증과 골절을 예방할 수 있는 최고의 칼슘제품인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환상은 깨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유를 마시면 성장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고 - 어린 송아지를 8개월만에 소 한마리로 키울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아이를 커다랗게 키워낼 수도 있다. 골밀도가 높고 튼튼하게 키워낼 수도 있다. 하지만 칼슘에 대한 또 한가지의 진실이 있다.
"음식을 통해 들어오는 칼슘이 많으면 인체는 그중 일부만을 잡아두고 초과분은 배출시킨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이 칼슘을 별로 섭취하지 않는데도 골 질환을 피하기에 충분한 칼슘을 몸에 지니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때문인 것이다. 칼슘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공룡 뼈처럼 되지 않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그런데 과도한 칼슘 섭취가 계속되면 결국 그러한 메커니즘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게 헉스테드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식이성 칼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뼈에 저장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인체가 어떤 지나친 상태에 놓이게 되면 메커니즘을 매우 섬세하게 조절하는 능력을 잃을 수 있다는 개념은 생물학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현상이며, 헉스테드의 가설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의 이론은 칼슘을 평생 최대 한도로 먹은 사람들이 골다공증으로 꼼짝 못하는 결말을 맞는 일이 많은 이유에 대한 설명일지도 모른다(120-121)"

이 이야기는 수많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내놓은 이론이다. 우유를 마신다는 것이 - 그러니까 과도한 칼슘의 섭취가 무조건 골다공증으로 고생한다는 결론에만 주목하라는 것은 아니다. 저자 티에리 수카르는 우유를 많이 마시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과도한 유제품의 섭취가 오히려 골다공증을 악화시킬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모든 이가 알고 적당한 유제품의 섭취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같은 고단백질이어도 소젖보다 콩이나 밀단백질이 어떤 면에서는 더 훌륭할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여전히 우유에 대한 진실은 감춰지고만 있는 것일까.

TV를 보다보면 국민의 영웅인 수영선수 박군이 열심히 운동하며 우유를 마시는 광고를 보게 되기도 한다. 완전식품으로 알려져있고 성장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우유에 대한 광고는 물론 낙농업협회에서 자본을 댔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때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낙농업계와 그들의 충실한 협력자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자본의 논리에 파묻히는 수많은 진실에 대한 생각에 씁쓸해진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모든 유제품을 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과 같이 완전식품과 골다공증의 예방차원에서 의무감을 갖고 꼬박꼬박 마시던 습관은 사라질 것이다. 우유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 이처럼 우유의 소비가 줄어들고 낙농업계의 이윤창출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니 그들은 자본의 논리에 맞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우유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온히을 다해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에 대해 알 권리가 있는 우리들을 위해 나 역시 내가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려 노력할 것이다.
수많은 과학적 진실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상반된 연구결과에 접근하는 것조차 막혀있는 현실이 씁쓸할뿐이다.

"이 책에는 과학적인 증거들과 최고 수준의 국제적 연구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 내용들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분명 힘들 것이다. 큰 성공을 거두어야 마땅한, 이 훌륭한 책이 알려주고 있듯이 유제품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성장인자로 인해 많은 폐해들이 야기된다. 비만증에 이르는 과체중, 당뇨병 위험, 유방암 및 전립선암 위험의 증가, 알레르기, 이비인후계의 협착, 소화장애, 신경계, 피부, 소장, 결장, 관절에 타격을 주는 자가면역질환의 위험... 과도한 유제품은 심지어 골다공증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암 전문의 앙리 주와유 교수의 발언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강요하다시피 의무적으로 마시게 하는 우유의 과도한 섭취가 가져오는 재앙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http://lifewithu.egloos.com2009-11-24T04:36:420.31010
by island | 2009/11/24 13:36 | 트랙백
누구에게나 삶의 비밀은 있는 것이지만.
블랙북블랙북 - 10점
F. E. 히긴스 지음, 김정민 옮김, 이관용 그림/살림Friends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에 빠졌었다.
블랙북의 내용은 러들로 피치라는 한 소년이 자신의 생이빨을 팔아넘기려는 부모에게서 도망쳐 나오고, 그후에 우연히 만나게 된 조 자비두라는 이는 자신의 존재도 비밀스러운데, 마을사람들의 온갖 비밀을 사서 검은노트에 기록만 하는 기이한 생활을 하고 있다. 조 자비두와 함께 지내면서 마을사람들의 비밀을 기록하는 일을 맡게된 러들로 피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을사람들과 관계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사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는 더할나위없이 훌륭하다.
내가 잠시 고민했던 이유는 내용의 흐름이 아니라 간혹 느끼게 되는 잔혹함때문이었다. 술을 마시기 위해 부모가 아들을 팔아넘겨 생이빨을 뽑게 한다는 것이나 잔혹한 이발사 스위니 토드를 연상케하는 에피소드, 그리고 또 추악한 이야기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역시 어릴적에 피의 복수로 이야기가 진행 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거나 노예수용소 같은 보육원의 살벌한 풍경이라거나 뒷골목의 소매치기와 부랑아들의 못된 짓과 그것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어른들의 추악한 모습이 담긴 레미제라블 같은 책을 읽었지 않은가. 완역본이 아니라 조금은 순화된 표현으로 번역되었으니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용의 흐름속에 이 세상의 추악한 부분은 감출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책을 읽으며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세상을 배운 것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 사람에 대한 믿음과 연민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니 이 책 역시 그러한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일깨워 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고 청소년 권장도서임에 의문을 갖지 않으련다.

러들로 피치는 죄의 유혹에도 빠져들고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두려움도 느끼는 평범하고 나약한 소년일뿐이지만 타인에 대한 연민이 있고 올곧은 삶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며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특별한 소년이다. 우연찮은 인연으로 시작된 러들로와 조의 만남은 기이한 일상을 시작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블랙북의 비밀은 점점 더 쌓여가기만 한다. 이 책은 기발한 상상력이 넘쳐나는 판타지 문학이라고 할수있지만 또한 실재하는 삶의 진실과 연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지혜서이기도 하다.
비밀에 비밀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데 진솔하고 용감한 러들로의 회고록을 통해 모든 비밀의 문이 열리고 블랙북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내용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구성 자체도 무척 흥미로워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누구든 상관없이 평등하게, 명예를 되찾거나 사과를 하거나 자비를 구할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 (322)은 비밀을 지키는 이들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한두가지의 비밀을 가지고 있을테니...



http://lifewithu.egloos.com2009-11-20T14:36:330.31010
by island | 2009/11/20 23:36 | 트랙백
신데렐라와 작은 유리 신발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 8점
이양호 지음/글숲산책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라는 제목은 조금 서툰말의 느낌이 들었다. 어릴적에 읽은 신데렐라는 그 이름 자체가 재투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책의 제목은 말 그대로 신데렐라를 우리말로 풀어놓고 그 문장을 제목으로 적어놓았으니 왠지 조금 단호한 느낌도 받게 되고.
어쩌면 나는 '공주'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적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릴때부터 신데렐라를 공주의 대열에 놓지도 않았었고 신데렐라는 재투성이가 맞기는 하지만 새삼 그걸 강조하는 문장을 앞에 놓고 보니 단순함을 뜻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게 된다.

어릴적에 아이들이 놀 때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라는 노랫말에 맞춰 짝궁과 손유희를 하며 놀 때 불러대던 그 노래말이다. 사실 뭐 나는 그런걸 하며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신데렐라가 부모님이 안계신건지, 엄마만 안계셨던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가, 아니 내가 아는 신데렐라 동화 이야기는 콩쥐팥쥐 이야기처럼 어릴 때 계모와 의붓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지만 꿋꿋이 견디어내고 요정의 도움으로 왕자와 결혼하여 잘먹고 잘 살았습니다,라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아마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의 끝부분에 첨부되어 있는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와 작은 유리 신발 이야기인 듯 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 얘기나 저 얘기나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이야기나 뭐가 달라? 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신데렐라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테니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 기억속의 신데렐라는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일뿐이었다. 한 아이가 있었고 계모와 의붓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으며 온갖 집안일을 다 하느라 재투성이가 되었지만 마음씨가 착해서 못된 언니들을 혼내지도 못하고, 그래서 결국은 잘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일뿐 그리 크게 마음에 남는 동화이야기는 아니었다. 친구들은 모두 그림동화책으로 책을 읽으며 책에 실려있는 이쁜 신데렐라의 모습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원작의 단순한 이야기에 담긴 참 뜻보다 화려한 신데렐라의 공주같은 모습에 더 열광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글을 겨우 깨우칠때부터 그림동화가 아닌 깨알같은 글씨들만 담겨있는 이야기책을 읽어서 신데렐라 역시 그냥 하나의 옛날 이야기중에 하나였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동화는 아름답고 순수하고 이쁘기만 한 이야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때 유행하다시피 했던 잔혹동화라는 말 역시 잘못되었다는 이양호선생의 글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푸른수염'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형제의 동화이야기에 실려있던 그 이야기는 몇년 전에 개봉됐던 - 내가 무섭고 끔찍해서 보지 못했던 영화 스위니 토드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정말 이양호선생의 말대로 고갯길을 넘을때마다 떡하나를 던져주다가 끝내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사지육신도 던져주기를 서슴지 않았던 엄마의 사랑이 더 크게 다가오는 우리의 옛 이야기처럼 푸른수염을 읽으면서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나쁜놈은 결국 벌을 받게 된다는 느낌이 더 컸던 것 같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현명하지 못한 단순한 호기심은 죽음의 위험에 이를수도 있겠구나, 정도였을까?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의 내용은 신데렐라에 대한 담백한 원작의 꾸밈없는 담백한 번역과 영문번역과 독일어 원문이 담겨있고 뒷부분은 그에 대한 역자의 해설이다. 솔직히 역자의 해설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원문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은 왠지 종교적으로 치우친 해설이 아닌가 싶은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재'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설명이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떠나서는 그들의 문화에서 파생되어 나온 옛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해설 부분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재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신발에 대한 이야기, 새하얀 새, 옷이 상징하는 의미, 혼인의 의미 등등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상징과 의미가 마구 쏟아져나온다. - 이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으시라.

짧은 동화 한편 읽으면서 이리 세세하게 분석하고 파헤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짧은 이야기 한편에도 우리의 삶이 담겨있고 그 삶의 모습에서 나오는 진실함이 결국은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삶의 진솔함을 담고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깨닫는 것이 또한 전래동화를 읽는 이유임을 알고 우리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줘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신데렐라는 공주이야기가 아니라 재투성이 이야기라는 것을 제대로 전해줄 수 있다.


http://lifewithu.egloos.com2009-11-18T16:23:020.3810
by island | 2009/11/19 01:23 | 트랙백
카페 도쿄
카페 도쿄카페 도쿄 - 8점
임윤정 지음/황소자리

내 어릴적 꿈이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막연히 어떤 일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어린아이의 상상에서 끝내버리곤 했었던 꿈은 여러가지로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다음 내가 꿈꾸던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안다. 물론 정확히 안다고 해서 내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현재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금은 생뚱맞게 꿈, 그러니까 내가 이루고 싶은 소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내가 막 읽은 책이 카페 도쿄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리 생뚱맞은 건 아니다.

나는 작고 아담한, 우리집 거실같기도 하고 마당같기도 한, 이웃집에 마실나와 담소를 나누며 차 한잔의 여유와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카페 주인장이 되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카페 쥔장이 되고 싶은 건 어른이 되고 난 후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는 소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만의 분위기를 담고 싶은 카페 주인이 되고 싶다는 건 특별한 커피의 차별화가 아니라, 그곳에서 마시는 커피를 특별하게 만드는 그런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 도쿄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게 술술 잘 읽히고,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도쿄의 골목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작고 아담한 카페들은 단지 차 맛으로만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느낌있는 카페인 것이다.
물론 카페에 따라 사이드디쉬가 아주 훌륭한 곳도 있고, 소박하지만 깊은 향이 느껴지는 멋진 곳도 있다. 그런 멋진 곳을 대할때마다 내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듯 하다.

카페 도쿄의 중심이야기는 카페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카페 도쿄는 오로지 카페만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이야기와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각 카페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카페만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벌써 2년전의 책이 되어버려 도쿄의 카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없겠지만 이 책 자체가 도쿄의 뒷골목 풍경과 카페가 어우러짐을 보여주고 각 카페의 독특함과 특별함을 분위기로 알려주고 있으니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이다.


http://lifewithu.egloos.com2009-11-17T15:13:030.3810
by island | 2009/11/18 00:13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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